Tian Chengyou의 개인적인 일화
2009년 5월 16일 윈난성 자오퉁 출신의 남성 리창쿠이(Li Changkui)가 19세 왕가페이(Wang Jiafei)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그의 3세 남동생을 구타해 살해했다. 나중에 Li Changkui는 쓰촨성에서 항복했습니다. 고인의 가족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이 항복은 결국 그에게 '죽음 면하기 위한 금메달'이 됐다.
2010년 7월 15일, 윈난성 자오퉁시 중급인민법원은 고의적 살인과 강간 혐의로 리창쿠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 이후 윈난성 고등인민법원은 리창쿠이에게 사형을 유예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전국적으로 여론의 폭풍을 촉발했고 '사이가신(Sai Jiaxin)' 사건으로 불렸다.
2011년 7월 13일 The New Express는 운남 고등인민법원 부주석 Tian Chengyou와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Tian Chengyou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압박을 받고 있지만 이 사건은 확실히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벤치마크이자 모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Tian Chengyou는 이 나라가 진정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나라는 감정을 표출하는 사회인데, 그런 감정은 국가법적으로도 차분해야 한다. 모두가 살인을 외친다고 해서 사람의 생명을 쉽고 성급하게 빼앗지 않겠습니다. 사형을 줄이는 것이 주요 추세가 되었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더 이상 고문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는 노예제도와 봉건주의의 퇴보적인 방법입니다. 제가 법집행관으로서 사건 자체를 얘기하는 건데, 판결은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고등법원 판결위원회 위원 27명이 논의를 했어요. 재판부는 국민과 언론, 학계 등 모든 당사자의 의견을 경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결국 재판은 해당 국가의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전성유는 판결에 대해 네티즌들이 제기하는 반대도 이해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관념의 문제이고, 종신살인에 대한 전통적인 의식과 현대 사법관념, 국가형사정책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