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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보는 리좡 사건

2009년 11월 중순, 충칭의 한 갱단 두목 공강모의 가족들이 베이징으로 찾아와 리좡을 찾아 공강모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Li Zhuang은 Gong Gangmo의 수비수가 되라는 위임을 수락했습니다.

리좡은 2009년 11월 24일, 26일, 12월 4일 공강모와 세 차례 만남을 가졌다.

2009년 12월 10일 공강모는 리장에게 '고문으로 추출된' 허위 자백을 조작하도록 사주했다고 리장을 신고했다.

2009년 12월 11일 리좡은 소속 회사로부터 긴급히 베이징으로 소환됐고, 같은 날 공강모에 대한 변호를 종료한다고 충칭법원에 서면으로 통보했다.

2009년 12월 12일 충칭 경찰은 베이징에서 리좡을 체포해 다시 충칭으로 연행했다.

2009년 12월 13일 리좡은 형사구금됐다.

2009년 12월 14일, 중국청년일보, CCTV 등 여러 언론매체가 리좡 사건의 세부사항을 대대적으로 공개하기 시작했고, 리좡의 소위 문자 메시지를 게재했다. 참, 사람들이 바보야, 어두워졌으니 빨리 와라”는 문자 메시지는 나중에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12월 14일 리좡이 체포됐다. 혐의 범죄는 '증거를 조작하고 증언을 방해하는 변호'다.

2009년 12월 17일 리좡 사건은 검토와 기소를 위해 검찰원으로 이관됐다.

2009년 12월 18일, 해당 사건은 검찰원에 의해 충칭시 장베이구 인민법원에 기소됐다.

2009년 12월 20일, 유명 형사변호사인 고자성, 천유희가 리좡 가족의 위탁을 받아 리좡의 변호인이 됐다.

2009년 12월 28일, 고자성은 자신에게 외부 부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강모에게 부상 식별을 제안했다.

2009년 12월 29일, 법의학적 신원이 공개됐다. 신원 확인 후 공강모는 손에 상처가 없었다.

2009년 12월 30일 오전 9시부터 12월 31일 오전 1시까지 16시간의 재판 끝에 리좡 사건의 첫 번째 재판이 연기됐다.

2010년 1월 8일, 리좡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리좡은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2010년 1월 15일, 리좡의 변호인은 리좡을 다시 만나기 위해 구치소에 갔으나 여전히 무죄를 주장했다.

2010년 2월 3일, 리좡 사건의 2차 재판이 열렸다. 리좡은 법정에서 뜻밖의 자백을 하고, 고의로 '삼행시' 형식으로 쓴 '회개 편지'를 큰 소리로 낭독했다.

2010년 2월 9일 최종 재판에서 리좡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리좡은 법정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자백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2011년 4월 19일, 리좡 범죄 사건의 첫 번째 재판이 열렸고, 양측은 치열하게 변호했다.

2011년 4월 22일 리좡은 사건을 놓쳤고 검찰은 사실관계 의심을 이유로 기소를 기각했다.

2011년 6월 11일, 리좡은 감옥에서 풀려났고 그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2011년 12월 12일, 리좡 변호사 치수성과 리좡의 아들 리야통은 대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해 원래의 유죄 판결을 취소하고 판결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무죄로.

2012년 11월 15일 리좡, 왕시화, 공강화, 공윤페이는 최고인민검찰원에 가서 '리좡 사건' 전담반이 리좡을 모함했다고 고발했다.

2012년 11월 16일 CCTV, '베이징뉴스', '베이징타임스' 등 주요 웹사이트에서는 리좡 사건 고소 진행 상황을 보도했다.

2012년 11월 23일 최고인민검찰원은 리좡을 인터뷰했다.

2012년 11월 29일 충칭 제1중급인민법원은 리좡을 인터뷰했다.

2013년 7월 29일 중앙검사팀은 충칭 위두호텔에서 리좡을 인터뷰했다.